몸은 힘든데 마음은 편한 이유

최근 한동안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습니다.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많았거든요. 생각이 불어나고 마음이 짓눌린 채로 살게 되더군요. 글쓰기도 병행해보고 그러면서 어느정도 안정을 찾긴 했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무언가를 지울 수가 없었어요. 가만히 있어도 고민들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 때문에 두통도 찾아오고 가슴도 두근거리고 그러더군요. 스트레스가 몸의 반응을 일으키게 된 거죠. ​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바쁜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고민도 사치라고 여길 정도로 일이 몰려들었죠. 눈 뜨자마자 일하고, 정신 차리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 있더라고요. ‘계속 이렇게 살면 괴로울 것 같은데…’ 하면서 일을 꾸준히 하던 어느날, 아이러니하게도 제 마음이 갑자기 좀 더 편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두통과 두근거림도 줄어들고요. ​

사실 원인과 결과는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민이 깊어질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뭔가에 몰입하는게 최고거든요. 본래 생각이라는 놈은 시간을 먹고 자라는 거라서, 시간을 주지 않으면 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민도 사치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바쁘게 살면, 실제로 생각이 줄어들며 불편한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게 됩니다. 이걸 알고 있었는데 제가 실천을 못하고 있었어요. 바보 같았죠. ​

이건 뇌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오히려 뇌가 더 활발히 작동한다고 해요. 할 게 없으니 생각에 빠지면서 계속 그걸 곱씹게 만들죠. 근데 여러분도 잘 아시죠? 생각은 과거나 미래 모두 좋지 않습니다. 과거를 추억하거나 후회하는 것, 미래를 낙관하거나 걱정라는 것 모두 좋지 않아요. 오직 현재만을 충실하게 살아가는게 정신건강적으로 최고라 합니다. 제가 주장하는게 아니라 정신 관련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예요. ​

결국 저는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생각할 여유가 없게 됐고, 생각할 여유가 없게 되자 생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는 이상적인 상태가 만들어졌습니다. 언제부턴가 마음을 짓누르던 감정들이 사라지고 있더군요. 이게 몰입의 효과인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몸은 정말로 많이 피곤했습니다만… 그 덕에 일을 끝내고 며칠간 쉬엄쉬엄 살았더니 여유도 느끼고, 기분도 좋아지고, 결정적으로 이제는 쉬면서도 생각을 덜 하게 되어 좋았습니다. ​

물론 과로가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하지 못한 업무 패턴은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들 가능성이 높겠죠. 하지만 특정 시기에는 오히려 이런 몰입하는 기간이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더군요. 중요한건 그냥 바쁜게 아니라 바쁜 와중에 무언가를 털어낼 수 있어야 하고, 그 과정으로부터 성취감을 느껴 또 다른 한 발을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

언제부턴가 정신이 복잡하고 고민도 많아서 항상 이런 쪽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더 평온하게 살아갈지, 삶의 균형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 행복과 즐거움은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맞이해야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 등에 관심이 생깁니다. 사실 이런 것도 불필요한 생각의 일환인 것 같은데요. 그저 자기 할 일이나 열심히 하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나… 뭐 이렇게 결론 짓고 있긴 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민 때문에 괴로우시다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눈앞의 일에 몰입해보세요. 알면서도 못하는게 사람이더라고요. 저는 우연찮게 그 경험을 다시 하게 됐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마음의 평화가 잠시 다녀가더군요. 역시 사람은 영원히 괴롭거나 편안할 수는 없나 봅니다. 찬 물과 더운 물을 왔다갔다 하면서 앗 차거! 앗 뜨거! 를 반복하는게 인생이 아닌가… 뭐 이런 개똥철학으로 글을 마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