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진 물을 담지 말아야 되는 이유

제 개인적인 철학인데요. 저는 유독 살다가 나쁜 일이 생기면 되도록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어떻게든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서 기분을 나아지게 하죠. 물론 현실은 정말 차갑게 받아들이지만, 가슴속으로는 ‘그래도 좋아!’를 떠올려요. 잘 안되더라도 계속 꾸역꾸역 시도합니다. 그러다보면 신기하게도 좌절에서 빨리 벗어날 때가 간혹 있습니다.

​똑같이 비가 와도, 누구는 창밖을 보며 운치 있다고 하는 반면, 누구는 외출을 망쳤다며 우울해 합니다. 시험에 떨어져도 누구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다시 책을 펼치지만, 누구는 역시 난 안 된다며 모든걸 포기합니다. 객관적인 현실은 동일한데, 주관적인 경험은 완전히 다른 셈입니다. 물론 저도 후자일 때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현실을 좋게 볼려고 하는 관점이 생겼는데요. 도대체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걸까요? 타고난 성격 때문일까요? 아니면 외부 환경 때문일까요?

​심리학자 리처드 라자루스의 이론에 따르면, 사건과 감정 사이에는 ‘해석’이라는 단계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고 해서 감정 또한 정해진 것처럼 즉각적으로 유발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상사의 지적이라는 사건이 나타났다고 해볼게요. 만약 그걸 ‘나를 성장시키려는 조언’으로 해석하면, 나는 긍정적인 기분을 얻게 됩니다. 반대로 ‘나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해석하면 분노와 모멸감을 느끼게 되겠죠. 결국 감정은 사건이 아니라, 나의 해석이 만듭니다.

​허나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을 잘하는 존재라서, 어쩔 수 없이 해석을 안 좋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걸 계속 반복하면 삶이 괴로워져요. 마틴 셀리그먼의 전기 충격 실험이 아주 유명한데요. 강아지에게 전기충격을 가하고 탈출하지 못하게 만들었더니, 나중에는 빠져나갈 수 있게 해줬는데도 강아지들이 나갈려고 하지 않았대요. 알고보니 노력해도 소용이 없으니까 무기력해진 거였다고 합니다. 😢 그래서 실패나 역경이 다가오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못하게 됩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결론을 내면 어떨까요? <마인드셋>의 저자 캐럴 드웩이 언급한 성장 마인드셋이란게 있는데요. 누군가 내 능력과 지능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전을 회피하고 실패를 두려워한대요. 반대로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도전을 성장의 기회로 여기고 실패를 배움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합니다. 같은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성장의 결과도 완전히 달라지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실패를 하거나 일이 잘 안 됐을 때, 일단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실패는 일종의 데이터 수집과 같아요. 더 나은 방법을 알기 위해, 잘 안 되는 것 하나를 소거한거죠. 그렇게 데이터가 쌓이다 보면 잘 되는 것만 남게 될 거예요. 근데 ‘내 존재는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제가 얼마나 속상하고 기가 죽겠어요. 그래서 실패 할 때마다 계속 생각을 바꾸려 합니다. 불안함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요. 웃긴게 이건 의식적으로 세뇌시키는거라 마음이 안 받아들이면 그만인데, 어떨 때는 마음조차 여기에 속아서 받아들여질 때가 있어요. 그럼 정말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실패를 데이터로서의 가치로만 보게 됩니다.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는건 물론이고요.

​물론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 그거 완전 현실을 외면하는 정신승리 아니냐?
  • 잘 될 거라고 무조건 긍정만 부르짖는거 아니냐?

​이런 식의 반론이 나올 것 같은데요.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생각을 바꿔 좋게 생각하는건, 현실을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현실은 가난한테 부자라고 착각하며 믿으면 그건 망상이나 다름 없겠죠. 그것보다는 주어진 현실을 일단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해석과 대응 방식에 집중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가난해서 아무것도 못 해’가 아니고,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라고 질문을 바꾸는 겁니다.

​이건 현실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주체적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저는 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고 배웠습니다. 외부 세계는 우리가 통제를 못하잖아요. 변수도 많고요. 그래서 거기에 신경 쓰면 나만 괴로워 집니다. 대신 그걸 바라보는 해석의 틀은 내가 선택하고 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괴롭지 않게 살기 위해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수 밖에요.

​결국 우리는 두 개의 세계에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는 통제 불가능한 객관적 세계, 또 하나는 우리 마음속에서 펼쳐지는 주관적 세계. 심리학의 여러 이론과 실제 사례가 증명하듯, 우리의 삶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건 주관적 세계겠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찾아왔을까’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차피 바꿀 수 없고, 사건의 해석은 누구도 아닌 나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택은 오롯이 내 몫입니다. 👍